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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의 기적 - 모꼬지 코믹스, ≪다섯 명의 혜석≫
    만화 2022. 11. 6. 21:00

    사건은 사건을 물고 이어진다. 2021년 2월 나는 창작자 모임을 만들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모집글을 올렸다. '가늘고 길게 가는 모임'은 에세이 작가, 소설가, 화가, 만화가, 취미로 뜨개 하는 사람이 포함된 느슨한 모임이었다. 1기로 마감된 이 모임의 최대 아웃풋은 세 개다. 첫째, 모임 기간 동안 내가 <나와 나방과 개>를 일주일에 두 번씩 성실히 연재했다는 것. 둘째, 작가 한 사람이 뉴스레터 발행을 시작할 동력을 얻었다는 것. 그 작가는 오지윤이고, 지윤이 발행한 <보낸이 오지윤>은 책으로 모여 ≪작고 기특한 불행≫*이 되었다.

     

    셋째는 좀 먼 이야기인데, 인스타그램에 일 년 넘게 게재되어 있던 모임 공고를 본 카인비 작가가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가 더 이상 모임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답을 듣고 스스로 스터디를 만든 것이다. 2022년 2월 만들어진 스터디 모임엔 나 포함 일곱 명의 여성 작가가 참여했다. 우리는 토요일 저녁 9시마다 화상회의를 하며 각자의 작업 과정을 투명하게 - 정말로 정말로 투명하게, 머리 쥐어뜯는 광경 실시간 송출 포함 - 공유했고, 8개월이 지나자 만화책이 한 권 뚝딱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람?

     

     

     

    ≪모꼬지 코믹스 Vol 1. 다섯 명의 혜석≫은 모꼬지 코믹스 소속 작가 일곱 명 중 다섯 명 - 마진오, 카인비, 연두, 영재영, 주정민 - 이 참여한 단편만화집이다. 서양화가이자 문인 나혜석을 소재로 하여 각자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전개했다. '자유롭게 전개했다'고는 하지만 나혜석이 지닌 에너지, 페미니스트로서의 활동, 시대의 한계를 응시하고 그 점을 담론화한 행보를 공부한 입장으로서 이야기는 어떤 지점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여성 - 창조의 대상은 새로운 생명을 포함한다 - 이 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혹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려고 분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섯 편의 만화는 전부 흑백임에도 선과 면의 질감이 각각 다르다. 같은 소재에서 출발해 똑같이 흑백이라는 제한을 두었음에도 이토록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이 경이롭다. 더군다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온라인으로 만나가며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과 원고를 채우는 과정을 공개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제본 과정에선 모니터로 보는 원고와 종이에 인쇄된 원고의 느낌이 사뭇 달라 경이롭기도 했다. 원고를 그릴 때는 나를 괴롭게 한 B5 크기의 방대한 지면이 책으로 엮고 보니 시원시원하게 느껴져서 이 판형에 동의하길 잘했구나 싶었다(사실 당시엔 B5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퇴고 후에는 알 수 없는 수치심(?)에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내 원고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5일 - 27일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 14에서 독자들이 코 앞에서 내 원고를 읽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순서상 맨 처음에 나오는 원고라서 다들 강제적으로 처음부터 읽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가 그린 만화를 열중해서 읽어주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자존감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다들 읽어주셔서,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본 책은 언리미티드 에디션 14에서 사흘간 세 자리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자랑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수필집으로 2018년과 2019년 소소하게 독립출판 활동을 했고 퍼블리셔스 테이블과 와우북페스티벌에도 참여한 전적이 있으나 이토록 폭발적인 판매량은 처음 겪어보았다. 모꼬지 코믹스 팀원들과도 말해 봤지만 성공의 이유는 알 수 없다. 우리 팀 계정의 팔로워가 백 명이 좀 넘는데 그 분들이 모두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찾아와 구매해주신 것이 아닌 이상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 기적이 11월에도 계속될까? 11월 11일 - 13일 홍대 무신사 테라스에서 열리는 퍼블리셔스 테이블에도 '모꼬지 코믹스' 부스로 참가할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주시라. 

     

    다음은 각 편에 대한 짤막한 설명.


    마진오, <천사는 여기 잠들다>

    혼인이 예정된 여자들은 '가정의 천사'라는 신분으로 관리되는 세계. 국가는 천사들이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반려인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살아가도록 보호한다. 그리고 여기 '가정의 천사' 서약을 앞둔 경희가 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미서약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카인비, <엄마와 딸>

    대학에 합격한 딸이 어느 날부터인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엄마는 막무가내인 딸을 찾아 무작정 지하철에 오르고, 대학 실기실까지 쫓아가게 된다. 엄마는 딸을 찾아 이전의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연두, <부치지 못한 편지>

    한대 나혜석을 사랑한 소녀가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부모님께 그 사실을 들켜 강제 혼약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나혜석과 멀어진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여느 주부와 다르지 않게 평범한 삶을 살던 주인공은 그간 잊고 지내던 나혜석이 몰락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영재영, <엄마의 비밀>

    "나도 나혜석처럼 될 거야!" 나혜석의 열혈팬이 된 사춘기 소녀 지아는 가정 노동으로부터 엄마의 해방을 위해 남자들과 대청소를 한다. 기절해버린 아빠와 남동생 몰래 엄마와 단둘이 보내던 오붓한 주말, 지아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엄마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주정민, <혜석언니랑>

    만화 작업이 잘 풀리지 않던 주인공은 무작정 수원으로 떠나 나혜석 동상 앞에 서게 된다. 갑자기 동상이 쩍 하고 갈라지면서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데, 그 곳에 나혜석이!


    작품 정보

    ≪모꼬지 코믹스 vol.1 다섯 명의 혜석≫ (2022), 펴낸곳 모꼬지 코믹스, 편집 및 그래픽 디자인 김수연 · 정희라, 184p

     

    모꼬지 코믹스 정보

    일곱 명의 여성 만화가가 모인 만화 창작 집단. 매주 토요일 저녁 9시 화상회의를 통해 서로의 작업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응원과 지지를 나눈다.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mokkozi_comics 

     

    소속 작가 인스타그램(가나다순)

    못니 https://instagram.com/motni.illust 

    반마 https://instagram.com/baby_centaur 

    연두 https://instagram.com/yeondoo_7 

    영재영 https://instagram.com/0jae0_art 

    주정민 https://instagram.com/joojeongmin

    카인비 https://instgram.com/kind_b

     


    각주

     

    * ≪작고 기특한 불행≫ (2022), 오지윤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 224p. 구매 링크는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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